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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직접행동 청소년

빛글 5월 우리의 벽 - 글쓴이 초



‘나의 장애인 친구’라는 주제를 보고 중학교 때 잠시 친했던 친구 최도연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중학교 2학년 때 도연이가 전학을 간 이후로 연락이 끊겨서 기억이 조금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도연이는 후천적 청각장애인이었고, 소리가 조금은 들리지만 거의 안 들리는 것에 가깝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도연이는 구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발음이 조금 어눌하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의사소통에는 거의 지장이 없었다. 사실 그때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장애인 친구를 만났던 때이다. 장애에 대해서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거나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 보면 알게 모르게 내가 도연이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때 나는 장애인을 무조건 배려하고 도와줘야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뭐든지 계속 도와주고 대신 해주려고만 했던 행동이 지금 돌이켜보니 좋은 행동은 아니었던 것 같다. 도연이는 그림을 정말 잘 그려서 옆에서 보다 보면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었다. 조금 친해진 이후에는 나에게 예중에 편입하거나 예고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했었고, 나는 응원한다고 말하면서 별생각 없이 넘겼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의 끝자락에 도연이는 정말로 원하던 예중의 편입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려줬다. 사실 은연 중에 장애인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낸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 했었다. 그래서 정말 부끄럽게도 나는 도연이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하면서도 정말로 합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 했던 친구의 합격 소식에 더 놀라고 기뻐서 축하해줬지만 마음 한 켠에 친구에 대한 미안함이 들었다.

그 이후로는 아쉽게도 연락이 끊겼지만 쉬는 시간에도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던 도연이를 보고 정말 본받고 싶은 멋진 친구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처음으로 사귄 장애인 친구고 장애인에 대한 나의 인식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나중에 한 청각장애인 웹툰 작가가 연재했던 ‘나는 귀머거리다’를 보고 장애인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관심이 생겼다. ‘나는 귀머거리다’는 작가의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그린 만화인데, 장애인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이나 관련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그려내서 재밌게 봤었다. 그래서 무작정 서점에 가서 책을 찾다가 ‘장애학의 도전’을 읽고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많이 깨달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 하나를 인용하자면 ‘손상은 손상일 뿐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손상은 장애가 된다’였다. 이 구절을 읽자마자 나의 무지했던 과거가 떠오르며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흔히 뉴스나 방송 프로그램에서 ‘장애를 극복한’이라는 구절을 많이 접할 수 있다. 그런 사례들 속에 등장하는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고 박수를 친다. 물론 나도 그랬었다. 하지만 그 구절을 읽고 ‘왜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볼까?’라는 의문을 난생처음으로 가졌다. 중학교 시절 내 친구 도연이는 그림을 잘 그렸고,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예중에 갔다. 당연히 축하할 일이지만 그것은 오롯이 본인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결과이기 때문이지 장애라서가 아니다. 도연이가 이루어낸 결과에 나는 진심으로 기뻐서 축하해 줬지만, 나도 모르게 ‘장애인’이기 때문에 더 특별한 결과라고 생각하고 기뻐했던 것이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세상으로부터 나를 가로막고 방해하는 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가로막는 무언가에 의한 벽일 수도 있고 내가 스스로 쌓아올린 벽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이 벽을 뛰어넘기 위해 애쓰는 순간들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장애인의 벽이 장애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불편함을 겪는 것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애는 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벽이 되는 것은 장애인이 불편함을 겪도록 하는 일상 속 차별이다. 따라서 변화해야하는 것은 장애인이 아니라 장애 자체를 벽으로 만드는 우리 사회이다. 중학교 시절 내 친구 도연이는 장애를 극복한 것이 아니며, 극복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 친구의 모습 그대로 본인의 노력과 능력으로 원하던 결과를 성취한 것뿐이다. 도연이가 축하받아야 할 일은 원하던 목표를 스스로 성취했다는 사실이다. 글을 쓰면서 오래 전에 봤던 도연이의 그림이 떠올랐다. 나에게 꽤 많은 그림들을 보여줬었는데, 이상하게 한 그림이 계속 머릿 속에 떠올랐다.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푸른 바다가 그려진 그림이었는데, 하늘을 형형색색의 부드러운 실과 천으로 채운 것이 정말 아름다웠던 그림이었다.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하늘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던 그림 속 실과 천처럼 도연이와 벽을 깨고 나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벽 바깥으로 나가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2021년 6월 청소년, 빛글로 세상을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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