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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직접행동 청소년

빛글 6월 커뮤니티 - 글쓴이 르네

“그거 알아? 사장님이 B한테 남자 소개시켜주겠다고 하도 그래서, B가 진짜 짜증나서 사장님한테 화냈대. 자기 남자 안 좋아한다고.”

스탭밀을 먹을 때 C언니가 불쑥 그 얘기를 했다. 전날 풀타임 근무를 한 B언니가 비번인 날이었다. 언니는 주변을 슥 둘러보더니 암호를 전달하듯 목소리를 깔았다. 사장님은 아마 못 알아 들으셨을 거야, 독실한 크리스천이잖아.

나는 운이 좋았다. 바로 직전 근무지에서 공개 사내 연애를 하고(시작과 동시에 사업이 망해서 실직했다) 여기서도 은밀하지만 퀴어와 앨라이(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사람) 동료들과 함께 일하다니. B언니는 내가 알려준 헤어숍에서 단발에서 숏컷으로 시원하게 잘랐고 C언니는 자원활동하는 인권영화제에서 유일하게 이성애자인 자신의 신세한탄(?)을 내게 늘어놓았다. 둘이 팝업주점을 열었을 때, 밤중에 오타가 가득한 문자를 받고 급히 달려갔던 그곳은 이미 술과 노래로 무아지경이 된 비건-페미-레즈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나만 맨정신인 게 괴로워 한라산을 들이 부었던 그날 밤, C언니는 한사코 혼자 정리하겠다며 채개장이 담긴 락앤락을 쥐어주고 밖으로 내쫓았다. B언니는 2차로 클럽에 처음 가봤다가 친구들을 잃어버려 혼이 빠진 카톡만 하다가 왔다고 했다. 손님으로는 절대 오고싶지 않은 그 식당에서 뛰쳐나오지 않고 꼬박 반 년을 버틴 건 그들 때문이었다. 나의 정체성을 온전히 보이고도 편안할 수 있는 누군가, 혹은 커뮤니티는 그 존재만으로 기어코 나와 동료들을 살게 했다.

나는 철저하게 이 사회에서 비가시화되는 퀴어들의 분명한 존재와 그 안에서만 돌고 도는 이야기들을 알고 싶었다. 나는 구글링으로 몇 개의 온라인 레즈비언 커뮤니티를 찾아냈고, 휴대폰 본인 인증과 민증 사진 검사까지 통과된 후에야 그곳에 들어가볼 수 있었다. 하루 방문자가 몇 천 명 씩 되는 이곳엔 일상이나 고민을 나누는 게시판, 만날 사람과 모임을 찾는 게시판 등이 있었고 매 분 새로운 글이 속속 올라왔다. 성생활 게시판의 글은 꼬박꼬박 읽어보았는데, 음경 없는 섹스를 알아가는 건 마치 tv 프로그램의 한 장면처럼 머리에 파앗 퍼지는 초록색 빛과 함께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는 과정 같았다. 나는 여자들만 있는 여자들의 연애가 너무나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녹진하고 뜨겁다고 생각했다. 그런 낭만적인 감상에서 깨어난 건 긴 머리에 우윳빛 피부를 가졌다는 누군가의 글을 보고 나서였다. 글쓴이는 체격이 작고 마른 편이라면 그의 애인은 키가 크고 탄탄한 몸을 가졌다고 했다. 애인은 섹스할 때마다 초등학생을 만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느껴진다고 말하면서도 흥분하면 ‘없는 게 서는 기분이다’, ‘임신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임신이라니, 임신이라니! 자신의 애인에게서 아동을 떠올리며 즐기고 있는 그 사람도, 이런 일을 자랑하듯 쓴 글쓴이에게도 소름이 끼쳤다. 레즈 커플에게는 음경이 없으니 저런 말이 섹시한 표현으로 쓰이는 건가? 내가 바이여서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건가? 하지만 그건 분명 남성의 언어였다. 발기된 음경과 삽입, 사정 후 임신을 ‘시키는’ 그 모든 행위의 주체는 생물학적 남성이며 그 관계 속에 남성이 없더라도 역할과 언어는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불현듯 떠올랐다. 페미니즘 게시판은 일주일에 한 번 글이 올라올까 말까 했다. 불과 며칠 전 성폭력 사건에 대해 2차 가해를 하는 댓글을 신고했고, 내가 커뮤니티에서 처음 쓴 댓글은 ‘당해도 싼 여자는 없다’였다. 오래 전부터 외모를 설명하는 은어로 사용되어 온 ‘일스(일반 스타일)’과 ‘티부(티나는 부치)’라는 용어에 대한 논란도 식을 줄 몰랐다.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가 확산되었을 때, 게이 때문에 레즈까지 싸잡혀 욕 먹는다며 앞장서서 같은 성소수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고 다시는 그곳에 들어가지 않았다.

다른 커뮤니티는 아예 공지사항에 ‘가장 민감한 페미니즘에 대해 찬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해놓기도 했다. 그러자 본인의 경험으로 집단을 일반화하지 말라는 관리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바이섹슈얼(양성애자)와 기혼 여성에 대한 혐오로 온통 얼룩졌다. 아무리 잘해줘도 바이는 가정을 꾸리니 안정적이고 싶다니 하며 남자랑 결혼한다며, 남편 등골이나 빼먹고 애나 키우다가 자기 시간이 생기면 레즈인 척하고 애인이나 섹스파트너를 구하는 파렴치한 불륜녀라는 식이었다. 여전히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인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비판은 페미니즘적이기 때문에 금지되었고 그 누구도 한국 사회의 반 동성애 문화와 동성혼 제도의 부재를 문제 삼지 않았다. 때리기 쉬운 건 결혼을 선택한 바이섹슈얼 여성, 아내와 엄마가 된 여성이었다. 얼마 뒤 게시판에는 ‘기혼 여성 가입 및 활동 금지’라는 굵고 빨간 글씨의 공지사항이 맨 위에 올랐다. 더 이상 나는 온라인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B언니에게 레즈비언은 페미니스트일 줄 알았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언니는 눈썹을 찡그리며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그의 마음이 들렸다. 녀석, 굉장한 생각을 했구나! 나는 내 주변 퀴어들이 다들 너무나 멋진 페미니스트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고 어깨를 으쓱 했다. 같이 일했던 언니들과 나의 친구들, 명랑하게 서로 일상을 이야기하고 영민하게 혐오를 생각하며 서로를 살리는 그들이야말로 내게 여자들의 사랑과 연대를 보여주었다. 여전히 소수자 커뮤니티 내 소수자 혐오를 어떻게 이해해야할 지 모르겠고, 여성 간의 사랑에서 보여지는 가부장제와 여성혐오를 다양한 퀴어의 모습으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문제를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어딘가 있지 않을까? 여전히 나는 온몸으로 혐오와 부딪히며 나를 유연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줄 또 다른 커뮤니티를 상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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