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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직접행동 청소년

빛글 7월 배달, 땀, 부담 - 글쓴이 르네

찬장을 열자마자 비닐에 담긴 무언가가 우당탕 쏟아졌다. 일회용 마스크였다. 사이즈가 커서 대충 안 보이는 곳에 하나 둘 박아두다보니 작년부터 쌓여있던 게 수십 개였다. 컴컴한 구석에서 내내 이를 갈다가 빛이 보이는 순간 내 얼굴을 후려갈긴 요 깜찍한 마스크들을 보며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미 함께 하는 마스크가 있어. 순면이라 고. 대신 너희들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새 인간을 찾아줄게.’ 집에서 딱히 할 일이 없던 천연 살균소독제도 끼워서, 중고거래 앱에 무료나눔 글을 올렸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눔 받겠다는 사람 열 댓 명이 메세지를 보내왔다. 가족, 사무실 동료… 보건의료 종사자에서 마음이 굳는가 싶더니 바로 다음 메세지에 크게 흔들렸다.

- 안녕하세요. 저는 매일 배달일하는데 땀을 많이 흘려서 매일 마스크 사는 게 부담 됩니다.

배달, 땀, 부담. 이 세 단어를 오랫동안 보고 있었다. 찐득거리는 소나기가 멎은 오후였다. 창 밖으로 달아오른 오토바이 엔진소리가 숨가쁘게 지나갔다.

*

폭염주의보 문자와 거리두기 안내 문자가 번갈아가며 윙윙 울려대는 요즘, 가스 불에 물만 올려놔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전날 저녁, 나는 밥을 먹기 위해 불 앞에서 씨름을 하고 있었다. 현관 밖 복도에서 부스럭거리는 봉지 소리와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맞은편 집은 이번 달에 ‘천생연분1’이 되었을 거다. 에어컨 바람으로 열을 식히며 나도 배달을 시킬지 고민하던 찰나, 텔레비전 속 앵커가 다음 소식을 전했다.

“찬바람 나오는 에어컨 뒤편에는, 뜨거운 바람을 내뿜는 실외기가 늘 있는 것처럼 시원한 데서 편리하게 시키는 배달 주문 뒤에는, 땡볕에서 고생하는 배달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 무더위를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요.”

아스팔트의 온도 60도. 쓰고 있는 헬멧도 같은 온도였다. 뙤약볕에 달궈진 안장은 앉을 수도 없을 정도였고 잔뜩 열 받은 핸드폰은 자꾸만 오류가 났다.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마스크는 시간마다 갈아줘야했다. 인터뷰에 응한 한 배달노동자는 흐르는 땀 때문에 눈 앞이 흐려져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밤 시간대 배달은 수익이 적어 낮 시간대 배달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서울 시내에 마련된 쉼터가 세 군데 있었지만, 강화된 거리두기 탓에 한 곳은 운영을 하지 않았다.

28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라이더 증언대회’에서는 폭염 속 배달 노동을 하는 라이더들의 경험과 대책을 이야기했다. 살이 타들어가는 듯한 도로 위의 열기, 열사병과 같은 어지러움과 떨림, 땀띠로 인한 가려움과 따가움을 고스란히 겪으며 배달 일을 했고, 심지어 더위에 체온이 40도 이상 오르자 건물 출입을 제지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폭염에 노출된 배달 노동자들에게 휴식 공간과 휴식 시간을 보장해주지도 않았다. 배달대행 사무실에서는 눈치를 주거나 강제적으로 배차를 잡아 쉬지도 못하게 했고, 배달플랫폼에서는 더위가 가장 심한 때에 높은 배달비 프로모션 문자를 보내어 돈을 벌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일을 가야만 하는 환경을 만들고 있었다. 라이더유니온은 기본료 인상과 장시간 일할 시 경고 문구를 보내는 등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외에도 편의점, 주유소, 모 배달 플랫폼 사의 최고 등급 고객. 월 20회 이상 주문 시 달성할 수 있다. 1등을 활용한 소규모 쉼터 확충, 도심 내 소형 그늘막 설치, 일반대행 업체의 폭염 할증 마련 등 조치도 요구했다. 무엇보다 이런 대책을 특정 기업에게 모두 책임지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고민해보자고 했다.

*

그에게 메세지를 보내자마자 바로 답신이 왔다. 그가 흔쾌히 내가 있는 곳까지 올 수 있다고 해서 일 끝나고 저녁 늦게 와도 괜찮다 했다. 나는 마스크 묶음과 살균제 두 통을 가방에 담고, 냉장실의 오렌지 주스를 냉동고에 넣어 두었다. 이미 해가 진 뒤라 그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앳된 목소리는 분명하게 들렸다. 묵직한 종이백과 차가운 주스를 받아든 그는 되려 줄 것이 없다며 쩔쩔맸다. 나는 괜찮으니 조심히 들어가라고 인사했다. 되게 살갑지도, 되게 어색하지도 않게. 속으로는 그가 곧장 집으로 갈지, 일을 더 하러 갈지 궁금했지만 말이다. 다음 날 일어나보니 메세지가 와있었다.

- 너무 많이 챙겨주셔서 진심 감사드리며 나중에 기회되면 피자 가져다 드릴께요~^^

그의 오토바이 배달통에는 아마 피자집 로고가 있었을 테다. 말 뿐이어도 고맙다는 마음으로 그의 프로필에 거래 후기를 남기려는데, 전날 다른 누군가가 쓴 후기가 보였다. 작은 나눔인데도 집 앞까지 와주고 마스크도 줘서 감사하다고 말이다. 가늠해보자면 그는 이후 나눔을 또 받았고, 마침 갖고 있던 마스크를 감사 의미로 준 것 같았다. 분명 빈손으로 받는 건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진짜로 어느 날 피자를 짜잔 가져다주는 걸까? 정말로?

그런 그가 부디 안전하게 이 여름을 잘 났으면 좋겠다. 필요한 것들도,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그와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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